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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치원에 가보고 싶다


동료의 다섯 살배기 딸이 어린이집에 '합격'했다. 집 근처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곳인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입학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었다 한다. 새 학기가 다가올수록 불안해하던 그는 어린이집 문제를 매듭짓고 나서야 용서라도 받은 듯 홀가분한 얼굴이 되었다.



주변에 비슷한 문제로 고심하는 사람이 많다. 임대인의 전세금 '현실화'로 이사를 고려하던 A는 두 아이의 유치원 전쟁에 다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결국 대출을 받았다. 올해 국공립 유치원 입학 추첨(사진)에서 모두 고배를 든 B는 서울시교육청이 추첨 기회를 최대 4번으로 제한하고 중복 지원 시 합격을 취소하겠다던 방침을 뒤늦게 철회하자 '알바라도 동원해 좀 더 줄을 섰어야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학 입시도 아니고 어린이집·유치원 입학에 부모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아이의 머리를 후려치고 수면제를 먹여 재우는 보육교사 소식을 접할 때면 누구나 부모 편이 된다. 입학 과정이 고생스럽더라도 아이를 제대로 돌봐줄 보육시설에 맡기고 싶은 것은 부모의 당연한 마음 아닌가. 경쟁을 넘어 전쟁이 된 국공립 보육시설 입학 문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걸까.



일본의 작가이자 교육 실천가인 하이타니 겐지로는 '아이들이 행복한 유치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1983년 고베 시의 희망 부지에 0세부터 6세 원아 120명과 15명의 교사 규모로 '태양의 아이 유치원'을 연다.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육체노동으로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이 생기는 것을 꺼림칙해하던 그는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 차입금을 제외한 모든 유치원 설립기금을 자신의 인세로 충당했다. 에세이 <상냥하게 살기>(양철북)에는 소유와 노동,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한 하이타니 겐지로의 인생철학이 잘 담겨 있다.



아이들에게 배우며 함께한다는 신념은 그 유치원 교사 모집 광고에 잘 드러난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로서의 어린이, 깊은 인간애를 체득한 생활인으로서의 어린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소중한 생명들이 표현하는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더불어 살 아름다운 집단을 만든다.'



교사의 성장도 소홀히 하지 않은 이 유치원에서는 유치원 선생님들이 '잠시 아이들과 떨어져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교 선생님처럼 유치원 선생님에게도 3주간 여름휴가를 준다.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터지자 CCTV 설치 의무화 법안부터 들고 나오고, 부랴부랴 보육교사 자격시험을 국가고시로 전환하겠다, 전업 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따위 단기적 규제 대책만 내놓고 있는 한국 사회에 무엇이 먼저인지, 무엇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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